2008년 05월 18일
무제(3)
실은 이거 판타지임
4.
하늘엔 시리웁게 파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소름이 돋아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바람은, 차갑고 기분 좋게 불었다. 온 몸으로 그 바람을 맞으면서 환희를 느꼈다. 우우우───
한참 동안 그렇게 바람을 맞았다. 바람이 잔잔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도, 새빨간 욕조도 없었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는 처음부터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는 온통 녹음과 향기로운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을 가리는 불쾌한 나무도 없었다. 사방에 펼쳐진 푸른 클로버와 이름 모를 꽃들에서 풍겨져오는 내음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먼발치에는 하얗게 서리 맞은 모습의 산들이 우뚝우뚝 누워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게 무언가 말하면서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이유를 알았다. 내 몸은 여전히 나신이었다. 순간 수치심이 찾아왔다. 급히 중요한 부분을 머리와 손으로 가렸다. 얼핏 보인 손목엔 상처가 그대로 나 있었다. 그리고 상처는 기억이 되어 온몸을 거머쥐었다. 손목을 그을 때의 기분도 떠올랐다. 동시에 이 상황에 대해서 의아함도 느꼈다. 뭐가 뭔지 모를 상태가 되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남자는 내 쪽을 보지 않으려 애쓰곤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자기 셔츠를 벗더니 내게 내밀었다. 고개를 끄덕이곤 옷을 입었다. 그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눈을 맞추며 무어라고 말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아니었다. 곁다리로 들은 일본어도 아니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일단 내 생각을 이해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손으로 입 모양을 낸 다음 고개를 저었다.
"못 알아듣겠어요."
남자는 내 의도를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뭔가를 내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미안하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항아리에서 올라오는 뱀처럼 온몸을 뒤틀기 시작한 그를 보고 내가 먼저 나를 이해시켜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나를 가리킨 뒤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알아들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는 고민하는 듯 하다가 나를 가리키곤 뭔가 먹는 시늉을 해보였다. 저건 나를 먹겠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설마.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내 배를 가리키고 손을 저었다.
"배고프지는 않아요."
# by | 2008/05/18 00:35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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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명문이나 소설이나 실은 별 반 다를 건 없지만, 소설은 쓸 줄 아는 사람이 쓰는 거고 설명문은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넌 다행스럽게도 충분히 소설을 쓸 수 있고, 어쩌면 시도 가능하리라고 본다만, 너의 소설을 위해 너는 설명문을 간혹 망각하는 경향이 보여서 좀 아쉽구나.